
안녕하세요 희석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산다)
안녕하세요, 저는 독립출판사 발코니를 운영하면서 글도 쓰고 있는 ‘희석’이라고 합니다. 원래 제 주민등록상 이름은 ‘안희석’이에요.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부여받은 부계의 성이 싫어서 행정 서류가 아니면 희석 이름만 표기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성만 바꿔 개명 신청할 계획인데 그게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작부터 너무... tmi네요. (희석)
1호 용사 민음님에게 “다음 용사를 지목해 주세요.”라고 하니 희석님을 지목하셨어요. 희석님은 스스로를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저를 지목해 주신 민음 님과 지목을 수락해 주신 산다 님께 감사해요. 글쎄요. 저는 제가 용감한 사람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용감하지 않아서 더 용감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겁이 정말 많습니다. 아직도 천둥 치는 날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두운 곳에 혼자 있는 걸 싫어합니다. 잠도 혼자 잘 못 자서 출장 같은 걸 떠나야 할 때는 가장 작은 방으로 골라서 숙소를 예약합니다. 세상엔 온통 무서운 것들뿐이에요.
그러나 벌벌 떨면서도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일들은 어떻게 또 해냅니다. 그건 제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예요.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50년이 지났을 때,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세대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부당한 것이 있으면 함께 소리쳤다고 기록을 남기고 싶고, 모든 걸 잘 해내진 못했어도 가만히 있거나 회피하지는 않았다고 증거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출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있어요.
운영하시는 독립출판사 ‘발코니’는 주로 지역·여성·청년을 중점으로 책을 만든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세 가지 키워드가 선별된 이유가 있을까요?
발코니라는 이름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발코니를 처음 만들 때 저는 서른이었습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참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마냥 젊은 청춘이라 말하기엔 조금 멈칫거림이 있고, 그렇다고 늙었다고 하기엔 아직 너무 젊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모호한, 경계에 선 정체성을 나타내면서도 ‘가능성’은 있는 이름을 출판사 브랜드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카페에서 이리저리 끄적이다 나왔을 때 번지르르한 건물에 매달린, 수많은 발코니가 보이더라고요. ‘그래, 발코니로 하자’ 싶어 곧바로 출판사 등록도 마쳤습니다.
발코니라는 건, 건물에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잖아요. 건물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별이 뜨는 모든 것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안전한 건물 내부가 아니라 발코니 위입니다. 그때부터 발코니의 모토는 ‘경계에 서서 가장 먼저 우주를 맞이하는 곳’이 됐어요. 이것을 상징하는 작가진을 어떻게 구성할까 고민했더니 자연스럽게 지역, 여성,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나왔습니다. 이 키워드를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쉽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는 존재들이에요. 한국은 늘 서울, 남성, 중장년을 대상으로 권력이 구성돼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중장년 남성. 듣기만 해도 아주 권력적이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 말고, 제대로 확성기를 쥐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게 발코니라는 정체성과 꼭 맞다고 생각했어요.

<부전승 인생>, <2039>, <몇 줄의 문장과 몇 푼의 돈>,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등 여러 권의 책을 쓰시기도 하셨어요. 책을 쓰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여러 가지 부분을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도록’ 쓴다는 점입니다. 저는 제 책에 따르는 악플을 좋아해요. 그 악플들을 읽어보면 대부분 남성 독자이거나, 기득권이거나, 실제 조직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더라고요. 권력자들이 불편한 의견을 내비친다는 건, 반대로 말해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뜻 아닐까 합니다. 제가 직접 쓰는 책들은 이 점을 꼭 지키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 책을 통해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습니다. 죄송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요. 권력을 가진 그들이 고작 제 작은 책 한 권으로 상처받을 때, 그들로 인해 진짜로 삶에 생채기가 생긴 사람들은 몇 곱절이나 많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를 읽었는데 첫 장을 펼치자마자 집중돼서 후루룩 국수 먹듯 읽었어요. (국수를 좋아합니다.) 읽다가 울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후반에 이 문단이 마음에 탁 걸렸어요.
처음에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솔직히 말해서 ‘다 망한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식의 자조가 더 컸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오늘까지 내가 겪어온 한국을 기록할수록 터무니없게도, 희망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희망을 꿈꾸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절망에 익숙해서 희망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모를 뿐이다.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p.200
책을 읽는 내내 ‘절망’이라는 구름이 ‘희망’이라는 햇빛을 가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이 살짝 움직여서 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우리가 희망이 어떤 모습인지 정확히 모를 뿐이라고 하셨는데, 희석님이 그리는 희망의 모습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 이런 말을 하면 저를 공산주의자니 소위 ‘빨갱이’라느니 험한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그래도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적어도, 정말 적어도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무리 무너져도 제 한 몸 편히 누울 수 있는 집 한 채씩은 꼭 가지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부동산은 더 이상 투자의 도구가 아니라 사회가 제공하는 기본 인프라로 전환되는 게 제가 그리는 희망의 모습이에요.
지금 한국을 붕괴시키는 각종 차별, 사회제도, 권력자들의 횡포 등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저는 ‘부동산’이라고 봅니다. 어떤 제도를 개선시키려 해도 부동산 문제가 최종 걸림돌이 되고 있어요.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정권까지 이어지는 동안 비겁한 권력자들 옆에 붙어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자손들이 모조리 독식한 부동산 시장을 깨부숴야 한국 사회가 겨우 한 걸음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꿈, 사랑, 용기 등을 말할 줄 알았는데 속물적이게도 부동산 언급이라 읽는 분들께서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제가 그리는 희망의 모습은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서울국제도서전’과 북페어 ‘전주책쾌’에 참여하셨는데 어떠셨어요?
두 행사 모두 규모와 주최 측의 색깔 등이 확연히 달라서 각자의 매력이 있겠지만, 공통점은 ‘새로운 세대’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출판사 설립 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국제도서전을 비롯한 각종 북페어에 나가고 있는데요, 확실히 독자층의 연령대가 낮아지는 걸 느낍니다.
지금 출판계에서는 각종 통계조사를 바탕으로 ‘신규 독자 유입이 멈췄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기존에 책을 읽던 40대부터 60대의 독자는 그대로인데 2030 세대의 책 구매율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통계조사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아한 것은 북페어엔 2030 세대가 대거 몰리는데 왜 기성 도서 시장의 책 구매율은 떨어질까 싶은 점입니다.
북페어를 경험하면서 어렴풋이 생각해봤어요. 아, 2030 세대가 유튜브나 숏폼 콘텐츠를 좋아해서 책을 멀리하는 게 아니라, 정보 과잉 시대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헷갈리는 것 아닐까 싶은 겁니다. 당장 온라인 서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봐도 딱히 흥미를 끄는 책이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눈앞에 보이는 책들은 베스트셀러이거나, 대형 자본을 등에 업은 광고 페이지니까요. 그런 책들은 이미 많이 봤기에 얼른 구매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북페어에 가면 정말 그동안 어디서 보지도 못한 별천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발코니도 실제로 북페어에 참여할 때마다 “와 이런 책도 있네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요. 서로 몰랐던 거죠. 이런 책을 찾는 독자의 존재도, 이런 책을 만드는 창작자의 존재도요. 이러한 경향이 특히나 올해 국제도서전과 전주책쾌에서 많이 느껴졌습니다. 발코니의 다음 책 기획에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아요. 출판도 갈수록 새로운 세대에 맞춰 발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큰 행사가 막 끝나셨는데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7월17일 제헌절에 <권력 냠냠>이라는 책을 새롭게 출간했는데, 관련한 북토크를 8월 4일 일요일 오후 4시에 서울 마포구의 ‘가가77페이지’라는 독립서점에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혹시 ‘왜 멀쩡한 사람도 국회에만 들어가면 이상하게 변하는 걸까?’ 하고 궁금했던 분들이 계신다면 함께해 주셔요!
참여 신청 링크: https://forms.gle/Gk7JEveaRjq632gA7
희석 북토크 참여 신청서
“이상하고 환장하는 나라, 한국에서 살아남기” 독자로부터 늘 긴급체포와 압수수색을 걱정하게 하는 작가 ‘희석’이 말하는 환장의 나라 한국. 성차별, 장애인 차별, 인종 차별 등으로 가득
docs.google.com

회사나 조직에서 나와 혼자 일을 하는 게 편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이시기도 하고 혼자서 출판사 운영도 하고 계신데, 내가 주체가 되어 일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장점은 혼자 일한다는 것이고 단점도 혼자 일한다는 것이에요. 출판사를 열고 나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개업 후 6개월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당장 출판사를 열 때는 내고 싶은 책이 있었고, 해보고 싶은 활동도 있었어요. 그 계획이 딱 끝나고 나니까 할 일이 없는 거예요. ‘아 이게 혼자 일한다는 것이구나’를 그때부터 제대로 겪었습니다. 누가 일거리를 주는 게 아니라, 제가 온오프라인을 휘저으면서 일을 찾아야 했어요.
다음 책을 기획하고, 책이 아니면 디자인 외주거리가 없는지 찾아다니고, 원고 공모하는 곳은 없는지 검색하는 등 하루가 모자랍니다. 내가 내 일을 만들어서 그 일로 내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많이 부담돼요. 지금도요. 바쁘지 않으면 덜컥 겁이 날 때가 많습니다. ‘요즘 여유롭네... 어떡하지? 돈은 어디서 벌어?’ 하고 통장 잔액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매달 빠져나갈 비용은 정해져 있고, 그걸 넘어서는 수익을 만들지 못하면 저는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런 부담감이 있다고 해서 혼자 일하는 게 마냥 나쁜 건 아닙니다. 내가 내 삶을 주도적으로 운영한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진짜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조직 안에 있을 땐 1년을 소모해도 보이지 않던 성장세가 한 달이나 두 달 만에 확 나타나니까 효능감이 큽니다.
아마 조직에 속해있는 분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경험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일과 중에 몰래 어딘가 가서 울고 오는 그런 경험 말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이것도 못 할까, 왜 이렇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일까 하면서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렇게 개인이 스스로 자책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과연 건강한 문화인가 싶었습니다.
혼자 일하면 이런 것들이 없어 마음은 편해요. 지금도 실수투성이고, 빼먹는 것도 많고, 아차하고 놓치는 것들도 여러 건입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난 왜 이렇게 엉망인가’ 하고 자책하지는 않아요. 혼낼 사람이 없으니 그냥 ‘다음부턴 조심하자!’ 하고 넘어갑니다. 내가 먼저 나서서 나를 갉아먹거나 비난하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무리 금전적 압박이 있어도 잘 견뎌내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희석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을 것 같은데 자신만의 ‘용기 충전법 ’ 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달리기를 해요. 요즘도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야외 달리기를 하는데, 1시간 정도 뜁니다. 뛰고 나면 용기가 충전되더라고요. 물론 처음엔 저도 10분만 뛰어도 숨이 차서 걷고, 30분은 언감생심이었는데 꾸준한 연습으로 이제는 조금 여유롭습니다
아마 2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요. 만들고 싶은 책은 많은데 당장의 생활비는 부족하고, 빚은 가득하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접고 새 직장을 찾아볼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인, 알바천국 등 구인·구직 사이트 웬만한 곳은 다 둘러보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답답하기도 하고 자신감도 계속 떨어지는 것 같아,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열심히 달렸어요. 음악도 팟캐스트도 아무것도 듣지 않고 제 숨소리랑 발소리만 들으면서 달리니까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졌습니다. 다시 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씻고, 저녁 푸짐하게 먹고, 푹 잤더니 뭔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계속해봐도 되지 않을까? 아직 완벽하게 망하지는 않았잖아?’ 싶은 그런 자신감이요. 그렇게 용기를 충전하고 발코니를 계속 운영했더니 오늘처럼 소중한 인터뷰 자리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달리기는 늘 제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활동이에요. 연골이 성할 때까지는 계속 꾸준히 달리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꼽자면?
글, 사람, 지구
이 세 가지로 하겠습니다. 순서대로 저를 먹여 살리는 것, 제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이라서 꼽아봤어요!
독립출판사 발코니 | Linktree
Linktree. Make your link do more.
linktr.ee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신 희석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관점의 책과 이야기들 많이 나눠주시길, 응원합니다!!! :)
'용감한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 번째 용사. 마더요가아쉬람_ 신상문 (0) | 2024.08.09 |
---|---|
두 번째 용사. 후각 예술 아티스트_ 김이단 (0) | 2024.07.11 |
첫 번째 용사. 숏트롱 시네마_ 김민음 (25) | 2024.06.21 |
<용감한 사람들> (0) | 2024.06.21 |